서정주 문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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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작성일17-04-17 12:11 조회3,263회 댓글0건본문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미당 서정주, 화사집]
짧은 싯구, 강렬한 은유와 압축적인 표현.
그런 이유로 암송이 가능한 몇 안되는 시이기도 하다.
우리말을 이렇게도 아름답고 관능적으로 표현한 시도 드물다. 생명현상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그의 초기 시세계를 가장 잘 나타낸 시이다.
처절한 한센병 환자의 생명에 대한 집착(애기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속설)과 어두운 밤에만 그의 존재(감정 표현, 행위, 울음 등)를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원죄. 청보리가 한창이고 곳곳에 봄꽃들이 넘쳐나는 이시기야 말로 미당에 대한 자연의 오마쥬가 아닐런지.
이런 멋진 재능(현대시의 거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을 카미카제에 희생된 장병들을 위해 사용한 그의 오점, 친일시인 등의 그늘이 아쉬울 뿐이다.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삶에 대한 겸허한 휴식을 제공해주는 시에 감사할 따름이다.




